학창시절을 보낸 곳

79년 청룡동 / 97년 청림동

⊙ 인터뷰이: 50대 어머니와 20대 자녀 
⊙ 현거주지: 과천 
⊙ 인터뷰일자: 2021년 11월 28일 오후 1시
⊙ 인터뷰방식 : 대면 인터뷰 
⊙ 참고사항
1) 거주기간: 1979년 - 1997년
2) 충북 진천 출생, 50대 추정 여성
3) 초/중/고/대학교를 봉천동에서 다님
4) 새마을운동, 오일쇼크를 경험
5) 오일쇼크를 계기로 도시빈민(인터뷰당사자의 표현임)이 되었음.
6) 현 청룡동 -> 현 청림동으로 이동 
7) 봉천중앙시장과 관악프라자, 현 중부시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음. 

"그니깐 내가 79년에 처음 올라왔을 때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서울이 맨 처음이 지하철이 1호선이 생겼고 그 다음에 2호선은 서울을 한 바퀴 뺑 도는 순환선을 . 그래서 그 당시에는 서울의 중심이 광화문이었으니까 여기서 부터 다 올 수 있게 이거를 이렇게 개발 하게 된 건데 그게 결국은 신림역, 봉천역, 이렇게 해가꼬  사당역으로 가는 2호선 라인을 여기 뚫었다는 거야 . 그니깐 그건 되게 놀라운 거지. 그니깐 서울을 여기까지 잡은 거지. 그래서 남부순환도로가 지금은 막히는 걸로 유명한, 그런데 그 당시에 내가 왔을 때 남부순환도로에 차가 가운데 1차선 밖에 안 다녔어. 그런데 국가는 얘가 이렇게 될거 라고 생각을 해서 그 설비를 갖췄기 때문에 그 당시에 나는 여기에  도대체 뭔짓 이여? 그래가지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신호등을 건너가야하는데 한참을 걸어가서 그 앞에 가서 기다리는 거야.
 
왜? 차가 없으니까. 그러고 나서 차는 두 줄만 다니는 거지. 그래서 요렇게 보면 남부순환도로 무단횡단 할 수 있었다니까. 그러고 더 웃긴 거는 양옆으로 그 당시에는 그러면 도대체 뭘로 시골에서는 소. 소를 끌고 마차를. 서울에서는 말을 끌고 다녔어. 그래서 남부순환도로에 차는 한 줄이고 (79년도, 80년도 이야기야) 어 그래가지고 양 옆으로 마차가 다녀가지고 횡단보도를 건널려면 말똥을 건너야 돼."

(중략) 

"그래서 79년도에 거기 청룡동 있었으면 알겠네. 청룡시장. 내가 처음에 갔을 땐 거기 산을 깎아서 택지를 만들어서 땅을 팔아서 사람들이 여기 건설업자가 집을 지어서 살고 하던 그 시절. 그떄는 아파트를 건설 할 수 있는 능력이. 여의도나 반포나 이런데 74년도,77년도 이 무렵에는 기술력이 처음에는 한 5층 까지 밖에 못 지었었고, 5층은 아마 철근 안 넣고 지었을거야."

"그래서 산 밑에 우리 첫 번째 집이 있는 상태. 그래서 삼촌들이 공부하고 있는 그 집으로 왔었던거지. 영락고등학교 앞에. 청룡동인데 산밑 라인을 따라서 산이 이렇게 있으면 영락고등학교가 산을 아예 판건데, 바로 옆줄이었고.여기를 넘어가면 신림동. 여기가 쑥고개. 언덕 엄청 가파른 곳. 거기가 옛날에  비행기장이었어. 우리는 쑥고개를 쑥고개라도고 불렀지만, 그 산을 비행기산이라고도 이름 불렀었어. 비행기산은 사실 비행기는 아니고 헬기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산이 니깐. 산은 국가 것이잖아. 그니깐 뭔가 필요하면은 막 밀어가지고 거기를 넓게 해가지고 거기다가  인제 그 당시에는 인제  여의도에 있는 여의도 공원이. 그것도 비행기 활주로였으니까. 활주로가 있는 비행장은 아니고 헬기장. 실제로 나도 헬기가 뜨는 걸 보지는 못했는데, 어찌되었든 그래서 거기가 비행기산이었어. "
 
(중략)

"그르치. 그니깐 최초로 겪은 거는 97년 아니 79년도에 오일쇼크. 그래서 오일쇼크에 대해서 한번 조사 해보면. 그래서 그때 당시에 국가 기관에서 근무 했던 사람들 은행, 뭐 이런 지금 우리가 이야기 하는 아주 큰 대기업, 이런데 근무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진짜 쑥대밭이 된 거야. 서울사람들의 삶이. 그런 일을 겪으면서 고용보험도 생기고 등등등등…뭐 이렇게 하게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어쨌든 이 일이 뭔지 몰랐다니까. 그때는 ‘뭐지?어? 뭐지?’ 이러다가 나머지 살아 남은 사람들이 오일쇼크로 이름 붙였던 거지. 그런데 이게 지금이제 그 당시에, 79년도에 우리 집에도 엄청난 사건이 있었지. 아버지 실직. 그래 가지고 우리집이 그야말로 도시빈민이 된거야. 그래서 실제로는 청룡동에 우리가 집을 가지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그 집을 팔고 그 다음번에 이사를 한게 이제 봉천 6동. 그리고 거기가 어디냐면 봉천초등학교, 지금 봉천초등학교 앞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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